칼럼

운하 대신 고속철도를 건설하자 ?

작성일 : 2008-04-13 00:12조회 : 3,341

4월 12일자 동아일보에 운하를 건설하는 대신에 고속철도를 놓자는 황호택 논설위원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작년 한나라당 경선 때나 대선 때에는 꿀먹은 벙어리 같이 운하에 대해서 조용하던 신문들이 뒤늦게 운하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싣기 시작했습니다.

운하에 대해선 나의 칼럼 '황당한 운하입국론'(2006년 여름에 독립신문에 실렸음)이 운하를 비판한 최초의 글이였다고 생각됩니다. 이따금 어떻게 해서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운하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되는 것이지요. (역사를 모르는 대통령이 통치하는 나라는 반드시 불행해 집니다.)

역사는 운하가 철도의 등장과 더불어 쇠퇴했고, 철도는 고속도로 등장과 더불어 쇠퇴했음을 보여 줍니다. 물론 두개의 바다나 강 사이가 아주 좁은 경우는 운하가 아직도 효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륙 운하는 이미 역사의 박물관 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취임 초 독일 방문 중 고속도로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운하와 철도를 건너 뛰고 고속도로를 건설했습니다. 2차 대전 때 연합군 총사령관이던 아이젠하워 장군도 히틀러가 건설한 독일의 고속도로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는 미국을 거미줄 같이 잇는 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를 건설하게 됩니다. 그 후 미국의 철도가 경쟁력을 상실해서 큰 시련을 겪게 됩니다.

황무지 같은 아프리카 신생국가에 교통시설을 건설한다면 운하, 철도, 도로 중 어떤 것을 건설하겠습니까 ? 당연히 도로이지요. 미친 독재자나 운하를 건설할 것입니다. 통신은 어떨까요 ? 유선전화 보다 무선전화를 건설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철도와 유선 전화는 이미 있으니까 고쳐서 쓰는 것입니다. 오래된 유럽에 철도가 거미줄 같이 많은 것도 그런 겁니다. 철도는 정부 지원이 많이 들어 갑니다. 시장경제 개혁을 한 칠레는 철도를 아예 없애 버렸습니다. 멕시코도 마찬가지입니다. 코퍼 캐년을 지나가는 관광열차만 하루에 두차례 운행하고 다른 철도는 다 뜯어 없애 버렸습니다. 시장경제하에선 열차가 버스와 경쟁을 할 수 없습니다. 경부고속철도 건설비는 회수할 가망성이 없는 것이지요.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서 고속도로와 울창한 산림을 본 것이 대한민국의 국운을 결정한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나무를 심고 자동차를 좋아 했지만, 김일성이란 작자는 철도를 좋아하고 나무라는 나무는 다 자르지 않았습니까.

철도와 운하는 세금 퍼마시는 귀신입니다. 반면 고속도로는 개통만 해 놓으면 차들이 알아서 다니고 요금 잘 내서 건설비 건질 수 있습니다. 운하와 철도가 환경에 좋고 도로와 자동차는 환경에 나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하는 사람은 '멍청한 바보'라고 보면 됩니다.

아래에 첨단환경 2004년 5월호에 실렸던 칼럼을 전재합니다. (나의 책 '비판적 환경주의자'에도 실려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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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는 환경친화적인가 ?
(첨단환경 2004년 5월호)

1. ‘철도 르네상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고속철이 2004년 4월 드디어 개통됐다. 총선을 의식해서 성급하게 개통한 탓인지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많았다. 기존의 새마을 열차 운행편수를 축소한데 대한 불만이 많이 제기됐다. 하지만 우리 고속철은 설계부터 몇 번씩 뜯어고칠 정도로 부실했었고,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드린 철도가 되었다.
여하튼 고속철 개통을 두고 우리나라에 ‘철도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서울 등 대도시에는 지하철 공사가 벌어지고 있으며 용인, 하남 등 수도권 도시들이 경전철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인천 국제공항과 서울 도심을 잇는 전철 공사도 시작했다. 철도 시대가 다시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 열차와 자동차

초창기 환경주의자인 배리 코모너는 환경문제의 원인을 잘못된 기술로 규정했는데, 그가 잘못된 기술의 하나로 든 것이 자동차였다. 코모너는 철도를 버리고 자동차를 주된 교통수단으로 선택해서 환경이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1970년 ‘지구의 날’ 행사 때 캘리포니아 대학 캠퍼스에선 자동차를 부수는 이벤트가 열렸다. 행사에 참여했던 참가자들은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자동차에 중독된 문명을 고발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
오늘날 자동차는 대도시 대기오염의 주된 원천일뿐더러 도심 교통체증의 주범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우리 생활 속에 차지하는 비중은 이런 문제를 훨씬 넘어 선다. 자동차 관련 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어 자동차가 굴러다니지 않으면 국가경제가 파탄에 처할 지경이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인지 자동차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환경론자 등 ‘자동차를 저주하는 사람들’(‘car haters’)은 자연히 철도와 그 위를 다니는 레일 교통수단(Rail Tranport)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 고속철, 지하철, 경전철 등 레일 교통수단은 대기오염을 야기하지 않고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수송하기 때문에 좋은 교통수단이라는 것이다.

3. ‘레일 교통수단’ 전성기 ?

한때 철도는 개척의 상징이었다. 미국은 대륙횡단 철도를 건설해서 서부개척을 완료했고, 일본은 식민지 한반도를 거쳐 만주를 잇는 대단한 철도망을 건설했다. 유럽 대륙에선 프랑스가 거미줄 같은 철도망을 건설했고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했다. 하지만 철도 역시 새로운 교통수단인 자동차의 거센 도전을 받았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전국을 잇는 주간(州間) 고속도로를 건설해서 자동차 시대를 열었다. 미국의 많은 도시는 전차 궤도를 뜯어내고 노선 버스를 도입했다. 관광객이 많은 샌프란시스코와 뉴올리언스를 제외하곤 모든 도시에서 옛날 전차가 사라졌다.
미국과 달리 프랑스와 일본은 철도를 꾸준히 유지하고 발전시켰다. 이 두 나라가 고속철을 가장 많이 운영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히틀러 시대에 고속도로를 많이 건설했던 독일도 유럽 철도망과 연계하기 위해 철도를 확충했다. 그래서 유럽은 ‘철도 왕국’이 된 것이다.
‘자동차 왕국’인 미국에서도 많은 도시에 철도가 부설되고 있다. 도시 교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레일 교통수단을 도입한 것이다. 워싱턴에 지하철이 성공적으로 세워진 것에 자극을 받아 애틀랜타,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등이 지하철을 건설했고, 샌디에고와 포트랜드 등은 경전철(Light Rail)을, 마이애미는 피플 무버(People Mover)라는 혁신적인 레일 교통수단을 도입했다. 다른 도시들도 뒤질세라 레일 교통수단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레일 전성시기가 다시 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4. ‘수월성(秀越性) 신화(神話)’

레일 교통수단이 과연 환경친화적인가 ? 사람들은 환경적 관점에서 볼 때 전철은 버스보다 낫고 버스는 승용차 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동차든 버스든 무엇인가를 타고 다니는 것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1997년 경제 위기 때 경험했듯이 경제활동이 침체하면 자동차 운행도 줄고 대중교통 운행도 줄어든다. 우리는 길이 막힌다고 불평을 하지만 교통량이 많은 것은 경제활동이 왕성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중교통수단을 선택하느냐 또는 승용차를 선택하느냐는 편리성, 신속성, 비용 등을 고려한 개인의 의사결정이다. 하지만 교통수요를 관리하라는 압력을 받는 도시 당국은 여러 정책수단을 동원해서 대중교통 이용을 강요한다. 대중교통에 대해 지방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것이 그런 정책이다. 지방정부가 대중교통수단에 투자를 하는 것은 그것이 환경관리와 교통소통에 있어 우수할 것이라는 ‘수월성(秀越性) 신화’(Excellency Myth) 때문이다. 하지만 지하철이나 경전철에 투자를 많이 하면 다른 분야에 예산을 쓰지 못하게 되어 전반적인 공공 서비스의 질(質)이 저하된다.

5. 경제성과 환경친화성

미국에선 철도가 전국에 깔리자 큰 강을 연결한 운하가 사업성을 상실해 버렸다. 그러나 철도 전성시기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고속도로가 들어서자 승용차와 트럭이 열차를 대신한 것이다. 미국 도시에 있어 주된 대중교통은 버스이다. 뉴욕만 오래 전부터 지하철과 통근전철을 운행해 왔을 뿐이다. 1970년대부터 몇몇 대도시가 지하철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일 교통수단이 없는 도시는 마치 2류 도시라도 되는 듯이 많은 도시가 지하철과 경전철을 건설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레일 교통수단은 승객이 너무 적어서 투자비용은 그만 두고라도 운영비용을 건지기도 어려웠다. 기존 철도를 업그레이드한 샌디에고의 경전철을 제외하고는 모든 경전철이 막대한 적자로 허덕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지하철도 그러하고, 하늘을 날렵하게 지나가는 마이애미의 피플 무버도 그러하다. 아무리 최신형 레일 교통수단을 건설해도 사람들은 신속하고 편의성이 높은 개인 교통수단인 승용차를 좋아한다.
레일 교통수단은 공급부터가 매우 비싸다.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 초기 투자가 많은데다 열차 등 시설과 자재를 공급하는 시장이 비경쟁적이다. 또 많은 운영인원을 새로 뽑아야 한다. 레일 교통수단에는 관료주의와 노조가 왕성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철밥통 문화가 조직을 지배한다. 한번 건설하면 없애기도 불가능해서 세금 들이마시는 귀신이 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은 레일 교통수단이 환경친화적이기 때문에 경제성이 뒤떨어지더라도 이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근거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대체로 이야기해서 경제성이 없는 사업은 환경에도 나쁘다. 비효율적인 것이 환경에 나쁘기 때문이다. 레일 교통수단은 건설하는데 많은 자원을 소모하며, 운행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쓴다. 문제는 결국 수송 능력이다. 수요가 적은 곳에 건설된 레일 교통수단은 환경친화성이 뒤떨어진다는 것이다. 레일 교통수단은 뉴욕, 도쿄, 홍콩 같이 고도로 밀집된 도심에서나 시장성(市場性)을 갖는다. 웬만한 도시에서는 버스운영을 보조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다.

6. 백일몽(白日夢)

프랑스나 일본과 달리 철도 인프라가 미비한 우리나라가 천문학적 돈을 들여 국토를 훼손하고 건설한 고속철은 경제적이지도 않고 환경친화적이지도 않다. 고속철을 세울 돈을 기존 철도와 버스 운영체계를 개선하는데 사용했더라면 열 배나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기존의 서울 지하철은 경제성과 환경성을 갖고 있겠지만 외곽 신도시를 잇는 전철의 경제성과 환경성은 의심스럽다. 대구, 광주의 지하철도 그런 문제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인천공항을 잇는 전철이나 용인, 하남 등에서 추진하는 경전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외곽지역은 버스 노선을 확충하는 것이 보다 경제적이고 환경친화적일 것이다.
고속철, 지하철, 경전철 등은 정치인들이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추진하는 측면이 많고, 큰돈이 오고가는 탓에 부정부패가 개입될 여지가 크다. 사람들이 갈수록 신속하고 경쾌한 교통수단을 선호하는 것도 레일 교통수단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철도 르네쌍스’는 백일몽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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