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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칼럼

언론을 바꿔 세상을 바꿀 순 없다(한겨례21)
작성일 : 2023-09-12 18:59조회 : 110


<한겨레 21>

언론을 바꿔 세상을 바꿀 순 없다

‘혼맥’이란 구체적 화두 붙잡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 “1만 명의 가문 클러스터가 한국 사회 지배한다”
등록 2016-07-20 17:25 수정 2020-05-02 04:28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하던 대통령 시절, 그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었다. 대통령은 종종 언론 개혁의 투사를 자처했다. 세상의 질서가 강고한 ‘8:2’로 재편된다는 사회과학이론이 맹위를 떨쳤다. 하지만 그는 그게 다 틀렸다고 말한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언론 개혁에 관심이 많은 대통령 시절이 돼서야 비로소 “언론 개혁에 실패했음을 깨달았”고, 그 대통령이 한국 사회를 자유무역협정(FTA) 체제로 끌고 갈 무렵엔 이미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가 역설한 ‘8:2’보다 훨씬 비관적 지형임을 목도했다.

“언론을 바꿔 세상을 바꾸자”던 투박한 외침을 깨고 그렇게 그는 뜻밖에도 ‘혼맥’이란 구체적 화두를 붙잡았다. 그리고 10년 넘게 홀로 왕성한 탐사취재를 이어가고 있다. 신학림. 2003년부터 2007년까지 4년 넘게 전국언론노동조합을 이끌던 이름. 다시 평기자를 거쳐 지금은 언론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의 사장이 된 그를 만났다.

- ”세상이 바뀌어야 언론이 바뀐다” 혼맥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언론노조 위원장이었다. 임기 후반부로 갈수록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족벌 신문의 혼맥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족벌 신문이 재벌을 감시 않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거대한 기득권 세력을 이루고 지배세력의 중심에 있는 것이 본질이었다. 언론을 바꿔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꿔서 언론을 바꿔야 하고, 언론을 장악한 실질 세력을 파악하지 못하면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지금 족벌 신문이 아닌 건 <한겨레>와 <경향신문>뿐이다. 조·중·동은 물론이고 <국민일보> <세계일보> <문화일보>가 다 족벌 언론이다. 족벌 언론이 왜 문제인지 <문화일보> 사례만 보면 간명하다. 지금 <문화일보> 사장은 고 정주영 현대 회장 대신 감옥에 갔다 왔고, 현대백화점 사장을 하다 사주에 의해 <문화일보> 사장이 됐다. 한때 호평받던 <문화일보> 논조는 그가 온 뒤 완전히 친재벌, 극우적으로 바뀌었다. 그는 직접 기사를 쓰지 않지만, 이게 바로 지배력이다.

- 혼맥은 사적인 문제다. 기본적으로 취재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사람 사회의 인연은 크게 지연, 학연, 혈연으로 나뉜다.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영향력이 생기면 지연과 학연은 노출된다. 하지만 혈연은 공개되지 않는다. 언론노조 위원장 임기가 끝나자 바로 사표를 쓰고 10년간 대한민국의 지배세력이 유력 가문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만 팠다. 혼맥의 정체 탐구였다. 불법적으로 자료를 취득한 적은 없다. 헌책방을 뒤지며 자서전과 전기, 평전을 수집해 3천~4천 권을 읽었다. 책에서 인물의 성공, 성장 스토리에 등장하는 가족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 해 족벌 가계도를 그려나갔다.

- 혼맥이 일종의 네트워크이긴 하지만 누구나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결혼하는 건 어느 정도 당연하지 않은가.

맞다. 네트워크. 지배세력에 포함되지 않은 일반인들은 사촌, 육촌이 누군지도 모르고 촌수가 먼 친척은 남으로 생각하지만 지배세력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친족을 정확히 파악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유해야 할 이익이 많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끼리끼리 모인다든지 좋은 곳과 혼인하려는 당연한 의지가 아니라 문제의 핵심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극소수 세력이 ‘얽히고설킨’ 것이다.

특정 재벌, 고위 정치인 기준이 아니라 가문별로 파악해야 한다. 나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일종의 ‘가문 클러스터’가 있다고 파악한다. 그 핵심 세력은 1만 명 내외다, 전체 인구의 0.02%다. 그래서 ‘8:2사회’라는 말은 틀렸다. 얼마 전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말한 99:1 사회, 그중에서도 0.02%가 한국 사회의 코어그룹이다. 99.98%의 사람이 0.02%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회, 이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한국 사회에서 기회 균등과 평등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 한국 사회의 핵심 가문이라 할 만한 곳이 있나.

한 가문이 아니라 가문 클러스트로 파악해야 한다. 핵가족 개념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삼성과 중앙일보 가문을 보자. 삼성 이병철 회장은 3남5녀를 두었다. 각각의 자식들이 한솔, CJ, 삼성그룹, 신세계이마트를 가지고 있다. 1994년에 형식적으로 중앙일보를 계열 분리했으나 아직도 중앙일보 주식 지분 중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은데 그것은 모두 삼성 가문의 지분으로 추정된다.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가진 지분마저 이건희 회장의 차명 지분일 것이란 주장도 있다.

이건희 회장이 홍석현 회장의 누나와 결혼해 가족공동체가 됐고, 홍석현 형제들이 실질적으로 보유한 계열사는 다시 100개가 넘는다. 이건희-홍석현 가문 클러스터이고, 이 안에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무수히 많은 핵가족이 존재한다. 이 가족들은 내부 거래한다.

두산의 경우를 보자. 두산의 모태는 ‘박승직상점’이다. 1882년 박승직이 창업한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회사다. 현재 두산은 박승직의 4세(증손자)가 사장이다. 그 형제들을 촌수로 파악하면 최소 6촌에서 8촌 사이가 두산을 장악하고 있다. 그들의 자식(5세)까지 이어지면 촌수는 더욱 넓어진다. 상법상 촌수 규정이 가문 클러스터에서 무의미해지는 까닭이다. 일반적인 친척 기준으로 파악해선 안 된다.

- 가문 클러스트가 형성된 결정적 시기나 변곡점이 있었나.

1960~70년대 고도성장 시기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체로 정부의 특혜 속에서 노동자들의 값싼 임금을 이용해 고도성장했다. 재벌은 정부로부터 각종 특혜를 누리며 성장해 클러스터를 형성했다. 정확히 박정희의 정치·경제 시스템이다. 정부가 재벌에 풀어준 막강한 특혜와 이권으로 재벌이 정계에 강하게 충성했고, 혼인으로 이익을 공유했다. 이것은 노태우 정부까지 이어졌다. SK가 지금 같은 위상의 기업이 된 것은 이 시기 지배세력의 마지막 장면이다. 최태원 회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위가 됐다는 것 외에 SK의 급성장을 설명할 방법이 또 있을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재벌의 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가 한 변곡점이었고, 이후 기득권 지배세력 입장에서 보면 별 볼일 없는 민주정부가 들어서며 아예 고착화됐다. 그리고 양상이 바뀌었다. 지금은 재벌이 정치권력 위에서 정치권력을 혼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 가문 클러스터, 고도 성장이 맺어준 혼맥언론 개혁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혼맥 연구를 시작했다고 했다. 조중동의 지배력에 혼맥이 핵심이라고 보는가.

가문 클러스터의 핵심은 내부에서 이익 경쟁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전체 이익을 침해하는 외부 공격에는 똘똘 뭉친다는 점이다. 조·중·동은 그걸 대표하는 카르텔이다. 예컨대 <동아일보>는 한때 야당지였다. 그런데 왜 극우 신문이 되었을까. 세무조사 때문에? 아니다. 시간이 흐르며 동아일보 사주 가족이 한국 지배세력의 코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호남 지주 출신이었지만 세대 교체되며 혼맥을 통해 지배세력의 정체성을 가졌다.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은 이한동 전 국무총리의 사위다. 동서는 허태수 GS홈쇼핑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동생 김재열씨는 이건희 회장의 둘째사위이자, 삼성 계열사 사장이자, 빙상연맹회장으로 평창올림픽의 이해관계자다.

-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은 좀 자유로운 것 아닌가.

전혀 그렇지 않다. 박정희 시대에 구축된 가문 클러스터의 핵심적 수혜로 대통령이 된 게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가. 박근혜 이후에도 그 가문의 영향력 안에 있는 수많은 인사가 있다.

예컨대 친박 주자로 거론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보자. 그가 사무총장 되기 전에 결정적 보직으로 당겨준 이가 한승수 전 국무총리다. 한 전 총리가 유엔 총회의장을 할 때 반기문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한승수는 박근혜의 사촌형부다. 한승수의 손윗동서는 고시 3과 모두 합격한 걸로 유명한 장득진이고, 장득진의 아들은 <조선일보> 기자이다.

이런 연결고리 속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박정희의 혼맥을 그대로 이어받아 존재한다. 박정희 자체는 가난한 농가의 아들이었지만 육영수 여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코어 그룹에 들어갔고, 장기 독재하며 그 후손이 족벌체제를 완성하고 장악했다. 전두환 집안도 마찬가지고 노태우 집안도 그렇다. 이명박도 효성그룹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가문 클러스터를 구축했다.

- 혼맥으로 보는 이상돈과 김종인의 차이하지만 혼맥은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혼맥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순 없다.

맞다. 혼맥 통제는 불가능하다. 다만 대한민국의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데 혼맥이 결정적 역할을 함에도 언론이 이 과정을 파악해 보도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보건복지부 장관 정진엽(의사 출신)이 어떻게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발탁됐는지 언론은 깜깜하다. 나는 ‘성상철’(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전 서울대병원장)이 정진엽을 추천하고 정진엽은 자기 논문에 성상철 이름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성상철은 TK(대구·경북) 인맥의 대부 신현확 전 국무총리(전 삼성물산 회장)의 사위다. 성상철이 의학계에 미치는 영향은 막강하다. 무엇보다 성상철은 10·26 사태 당시 박정희를 옮긴 국군서울지구병원 당직의사였다. 박근혜는 당연히 이걸 다 알고 있다.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혼맥으로 대한민국이 움직이는 걸 모두 설명할 수 없지만 이것을 모르면 대한민국의 본질을 알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드는 데 혁혁히 기여한 두 사람이 있다. ‘경제민주화’ 캐치프레이즈를 선취한 김종인과 4대강 사업 반대로 전임 정권과의 차별화 이미지를 제공한 이상돈이다. 모두 선거 끝나고 토사구팽당해 현재 야당 의원이 됐다. 하지만 두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온도 차는 확연하다. 이상돈은 적나라하고, 김종인은 유보적이다. 나는 그 이유를 혼맥에서 본다. 이상돈의 가족은 박근혜 권력의 떡고물을 노릴 만한 세력이 아니지만 김종인은 그럴 집안이다. 8년이나 비서실장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지극정성으로 모신 김정렴이 김종인의 처 작은아버지이다.

- 오래 작업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노출하려고 만들었으니 공개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연구소 형태로 계속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교하게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공개할 것이다. 장관 등 주요 보직 인사시 해당 인물에 대해 별도의 취재가 없어도 이 네트워크 안에서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수백 장 분량의 가계도를 정리했는데 앞으로 2천여 장 더 해야 한다. 내가 구축한 자료에 공직선거 출마 자료, 주식거래 내역을 합치면 엄청난 자료가 될 것이다. 그 전까지는 사람 이름 하나 찾기 위해 밤새 몇 권의 책을 뒤지는 ‘돌아이’ 같은 짓을 계속 할 것이다. 돌아이가 좋다. 돌아이가 아니면 이 짓을 누가 하겠나.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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