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한 미군 철수와 7.4 공동선언

작성일 : 2022-08-31 22:38조회 : 974

주한 미군 철수와 7.4 공동선언

닉슨은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67년 가을에 <Foreign Affairs>지에 'Asia After Viet Nam'이란 글을 발표했다. 닉슨은 중국을 더 이상 고립시켜서는 안 되고 일본이 중국에 대항해서 한국 대만 등 아시아의 자유진영 국가들을 지키는데 보다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닉슨의 임기 초인 1969년 4월 15일 동해의 공해 상공에서 북한을 감청하던 미 공군 첩보기 EC-121이 북한군 미그기에 의해 격추되어 승무원 31명이 전원 사망했다. 당시 닉슨 행정부는 베트남에 신경을 쓰느냐고 한국에서 그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창졸간에 발생한 일이라서 미 군부도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었고 그렇다고 북한을 상대로 보복을 해서 새로운 전쟁을 열 수도 없어서 닉슨은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해 7월 25일 괌에서 닉슨은 아시아 국가는 미국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닉슨은 베트남 전쟁의 베트남화(Vietnamization) 정책을 선언했다. 그리고 미국은 한국 정부에 주한 미군 1개 사단을 철수하겠다고 통보했고, 1971년 3월 주한 미 육군 7사단이 한국을 떠나서 본국으로 향했다. 베트남 주둔 미군도 꾸준히 줄어들어서 1972년 3월에는 3만 명 수준이 되었다. 의회는 1972년부터는 베트남에서의 미 지상군의 전투를 금지해서 미군은 군수 지원과 항공 지원, 그리고 군사고문단으로 남베트남군을 훈련하고 포격 지원과 항공지원을 요청하는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선 1972년 5월, 이후락이 평양을 비밀리에 방문하고 돌아왔고, 7월 4일에는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란 북한이 상습적으로 주장했던 개념을 그대로 반영해서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17일, 10월 유신이 공포되고 헌정이 중단되었다. 1971년 봄, ‘닉슨 독트린’에 따라 주한 미 육군 7사단이 본국으로 철수한데 이어서 1972년 봄에는 베트남 폭격에 참여하기 위해 주한 미 공군 전폭기들마저 한국을 뜨는 등 일련의 상황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며 그로 인해 납북공동선언 발표라는 뜻밖의 일도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7.4 남북공동선언은 실패작이었다. 이후락이 실현 불가능한 북한의 상투적 용어를 그대로 받아 들고 왔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박정희의 ‘좌익 본색’이 나타난 것이 아니냐고 수군대곤 했다. 그 때문인지 유신헌법 서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이란 용어가 들어갔고, 남북은 언제 다시 전쟁을 할 줄 모르는 긴장상태에 들어갔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용어를 둘러싼 논란의 뿌리는 거기에 있다.

닉슨과 키신저 시대를 다룬 책에는 한국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1500쪽이나 되는 키신저 회고록 <White House Year>(1979년)에도 베트남에 한국군이 참전했다는 이야기가 아예 나오지 않는다. 닉슨과 키신저는 한국에 대해 애정은커녕 관심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한국에 유신 체제가 들어서는 데 대해서도 키신저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키신저는 오히려 1973년 가을 칠레 군부 쿠데타를 사주해서 아엔데 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나는 그래서 한국 학자나 언론인이 키신저를 높이 사는데 대해 비판적이다.

- 사진 : 1971년 3월 미 육군 7사단 환송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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